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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 유배지

조희룡은 조선후기 秋史추사 金正喜김정희와 쌍벽을 이룬 文人畵문인화의 대가이다. 1789년 5월 서울에서 태어난 조선후기 매화도와 묵란도에서 고유의 화풍을 확립한 화가로 1847년 벽오시사를 결성, 후배화가들을 이끌고 문인화단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추사 김정희 등이 도입한 중국 남종 문인화로부터 이념미를 배제한 조선적 감각을 가미한 화풍의 세계를 열었던 사람이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서로 번갈아 가며 세도정치를 하던 시기에 활동한 조희룡은 예송논쟁에 휘말려 1851년 임자도로 유배되었다. 조희룡이 유배생활을 했던 장소는 임자도의 이흑암리 마을이다.

유배초기 임자도의 낯선 환경 속에서 공포를 느꼈던 그의 심리는 그가 그렸던 그림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섬에 사는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에 애정을 느낀 그는 유배지 오두막집에 "마나마리 갈매기가 우는 집"이라는 뜻의 '萬鷗金館만구음관'이란 편액을 붙이고, 그 속에서 칩거하면서 집필과 작품활동을 계속하였다. 임자도 유배 시기 조희룡의 기량은 이론의 정립과 기량의 완숙으로 절정의 경지에 올랐다. 1853년 조희룡은 3년간 임자도 유배생활을 마감하고 서울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그는 후배 지도와 은거생활을 계속하다가 1866냔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현재 조희룡이 살았던 임자도의 이흑암리 유배 적거지에 '謫居地碑적거지비'를 세워 기념하고 있다. 조희룡은 임자도 유배시설에 예술적 기량이 더욱 꽃 피웠고, 임자도 이야기를 많은 저술로 남겨놓았다.

조희룡 유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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