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낭만의 바닷길을...걷다. 섬들의 고향. 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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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코스) 흑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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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라산봉수대전망대에서 바라본 열두구비길과 천해의 만을 이룬 흑산항
상라산봉수대전망대에서 바라본 열두구비길과 천해의 만을 이룬 흑산항

망망대해 풍파를 넘어

흑산도는 조선시대에 중죄인의 유배지로 다시는 살아서 돌아오지 말라는 의미로 유배를 보냈을 정도로 열악한 낙도이기도 하다. 파시가 성행했던 한때는 개도 천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흥청대던 예리항은 맞은편 진리까지 배 위로 걸어서 갈 지경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정도로 번성했으니, 당연히 일하는 여성들도 많았으리라. 그래서 사무치게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흑산도 아가씨’의 애절한 노래도 있었으리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파시와 흑산도 아가씨를 생각하며 절경의 해안 일주도로 26km를 달려본다.
서해 먼 바다, 전날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아쉽게 가지 못했던 흑산도. 드디어 출항 허가가 떨어져 쾌속선에 올랐다. 목포에서 흑산도까지 쾌속선을 타고도 2시간을 가야 하는 항로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중간 기착지인 도초도와 비금도까지는 내해(內海)에 속해 바다가 비교적 잔잔하지만, 이곳을 벗어나면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파도가높아 멀미가 심하게 나는 구간이다.
그래서일까? 이윽고 세찬 바람과 높은 파도로 인해 쾌속선은 심한 롤링(rolling, 좌우 흔들림)과 피칭(pitching, 전후 흔들림)으로 흑산도에 접안할 때까지 대부분의 승객들은 선내에서 아비규환이다. 쾌속선이 좌우로심하게 기울거나 앞뒤로 들렸다 떨어질 때의 비명소리와 멀미봉투를 부여잡고 토하고 엉금엉금 기어가서 화장실 변기통을 부여잡고 있는 모습은나로서는 도저히 미안해서 못 볼 광경이다.
드디어 양 옆으로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마주 보고 있는 길게 드리워진 방파제 안으로 들어서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파도는 잔잔하다. 원형에가까운 흑산항은 참으로 크다. 예리의 대봉산과 진리 북쪽의 내·외영산도까지 이어진 흑산항을 보며 그 옛날 흥청대던 파시와 태풍을 피해 수천 척의 배들로 가득 찬 모습을 상상해 본다.
흑산도는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97.2km 떨어져 있으며, 홍도·다물도·대둔도·영산도 등과 함께 흑산군도를이룬다.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해서 흑산도라 했다고 한다. 최고점은 문암산(405m)이며, 깃대봉(378m), 선유봉(307m), 상라봉(227m) 등이 솟아있어 섬 전체가 산지를 이루고 있다.
‘신들의 정원’은 진리당을 중심으로 상록수가 자생하는 숲이다

사계절 푸른 숲속의 ‘신들의 정원’

흑산도의 모든 상가와 숙박업소가 밀집되어 있는 흑산항 예리에서 출발하는 일주도로는 약 26km로 반 시계방향으로 달리면 된다. 진리1구 해안을 달리다가 오르막길을 조금 오르다 보면 언덕 정상 부근 우측에 ‘신들의 정원’이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흑산도성황당의 본당인 진리당이 있으며, 다소 아담하면서소나무와 대나무, 동백나무 등 상록수가 사계절 푸른옷을 입고 있는 동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흑산도와제주도에만 있다는 초령목이 자생하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던 어미나무는 여러 해 전 고사했다고 하며, 지금은 43그루의 어린나무가 주변에서 자라는 중이란다. 이 초령목은 가지를 꺾어 불전에 놓으면 귀신을 부른다 해서 일명 귀신나무로도 불린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진리당 옆 숲길로 들어서면500m 가량 탐방로가 이어진다. 아담한 숲터널을 따라가면 용신당과 진리해안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데크가 나온다. 탐방로는 다시 진리당으로 이어진다.
신들의 정원을 내려오면 모래 반 자갈 반으로 이루어진 배낭기미해변이다. 해안길을 따라 파란 바다를 끼고 돌아나가면 진리2구로 이곳에서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있는 상라산 정상부까지 1.8km의 굽이길을올라야 한다. 서서히 오르막길이 시작되어 정상부에서는 역동적으로 용틀임하듯 휘돌아 올라야 하는 그 유명한 12구비길로, 상라산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흑산도의 명소다.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가는 여행자들
한다령 오르막에서 18km떨어진 홍도가 아련히 보인다

한다령에 맺힌 것은 땀인가 한인가

심리에서 사리로 가려면 가파른 열다섯 구비의 한다령을 넘어야 한다. ‘한’이 많아서 ‘한다령’이겠지만 자전거에게는 ‘땀 한(汗)’으로도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왔던 2008년까지만 해도 한다령을 비롯한 많은 구간이 비포장이었고 특히 한다령 고갯길이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엄청 끙끙대며 올랐던 이 고개가 어느덧 말끔하게 포장되어 있고고개 정상부에는 못 보던 멋진 조형물도 생겼다.
심리마을 앞바다가 잘 조망되는 한다령 공원에는날개를 단 천사의 모습으로 ‘흑산일주도로준공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신안군의 이미지인 ‘천사의 섬’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다. 그런데 천사가 아기도, 여성도 아닌남성인 것이 이채롭다.
한다령을 넘어 내려가면 흑산도에서 유명한 사리마을에 들어선다. 한적한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찾은 곳은 조선시대 유배지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유배문화공원이다. 정약전(1758~1816)은 이곳 사리마을에서유배생활을 하며 어류도감인 <자산어보>를 남겼고,사촌서당에서 후학을 양성했다고 한다. 사촌서당으로접어드는 아담한 돌담길은 산에서부터 흐르는 도랑을따라 나 있다. 사리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비탈에이중으로 담장을 두른 사촌서당(沙村書堂)을 복원해놓았다.
흑산도는 조선시대에만 130여명이 유배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흑산도가 예로부터 유배의 섬, 귀양지가 된 연유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고 뱃길이 험했던 까닭이다. 정약전은 천주교도를 핍박한 신유박해(1801) 때 연루된 것이 유배의 이유였다. 우리는 흔히혼자서 유배(流配)를 떠난다고 하지만, 유배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우선 왕족이나 고위관리들에게는 유배라는 말 대신 ‘안치(安置)’라는 말을 쓴다. 본인 혼자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절도안치(絶島安置)’가 있고, 본인의 거주지를 제한하기위해 집 둘레에 울타리를 둘러치거나 가시덤불로 에워싸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 ‘위리안치(圍籬安置)’와 가극안치(加棘安置)’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본인의 고향에서 유배생활을 하도록 하는 비교적 가벼운 ‘본향안치(本鄕安置)’가 있다. 정약전은 흑산도에 절도안치되었던 것이다.
묵령고개에서 바라보는 사리항
묵령고개에서 바라보는 사리항은 기암절벽에 둘러싸인 절경의 포구다

묵령고개에서 바라보는 절경의 사리 앞바다

사리마을을 나와 가파른 묵령고개를 넘어가는 길에는 사리포구 앞 바다가 황홀하리만큼 아름답게 조망된다. 여러 개의 돌섬들이 가로막고 있는 천혜의 사리포구 앞바다에는 칠형제바위가 둘러싸 천연의 방파제역할을 하고 있어 동남풍이 불어도 어선들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다. 7개의 작은 돌섬과 포구 안쪽으로오롱조롱 떠있는 고깃배, 산을 에워싸고 있는 사리마을이 어우러져 참으로 평온한 느낌이 들면서 그림처럼아름답다.
묵령고개를 넘어 소사리 샛개해변을 지나면 조선말의 의병 지도자이자 고고한 선비였던 ‘최익현유적지’를 알리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자전거로 달리다 보면자칫 놓치기 쉬운 곳으로, 바위 위에 큰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아래쪽에 초라한 비석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면암최선생적려유허비’인데 비석은 매우 작고 비석을 두른 돌난간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조촐한 면암유허비 뒤쪽 암벽에는 면암이 새겼다는 ‘기봉강산 홍무일월(基封江山 洪武日月, 기자가 봉해진 땅, 명나라의 덕을 입은 세월이라는 뜻)’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면암은 이곳에 유배를 왔다가 나중에는 대마도로 옮겨져 생을 마쳤으니 망해가는 나라의 선비로가혹한 만년을 보냈다.
최익현유적지에서 예리의 흑산항까지는 5.7km로아직도 세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흑산도는 평지가없는 온통 산악지대여서 고개가 참으로 많다. 일주도로를 달리면서 대표적으로 힘들었던 상라산고개, 한다령과 묵령고개를 제외하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힘든 고개들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일주거리는 26km에 불과하지만 휴식 포함해서 4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흑산항도 앞에서 자전거 동호인들이 모여 찍은 사진
흑산항도를 찾은 자전거 동호인들

자전거 여행자로 붐빈 흑산항

드디어 예리의 흑산항에 도착해 흑산도의 명물인 홍어회와 홍어애탕을 맛보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흑산항 주변에는 ‘천도천색 천리길’ 자전거 투어에 나선130여 명의 동호인들이 방문해 식당 골목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삭힌 홍어를 먹게 된 유래는, 홍어 조업기지로 유명한 흑산도에서 목포나 영산포에 도달하기까지 거리가멀어 운송 중에 자연적으로 삭혀진 홍어를 먹게 되면서부터라고 전해지고 있다.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한정약전은 홍어의 특성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나주 사람들이 홍어를 즐겨 먹는다고 적고 있다.
식당에 마주한 일행들과 식성에 따라 갓 삭힌 홍어회와 푹 삭힌 홍어회를 번갈아 맛보며 뜨거운 애탕으로 차가운 몸을 녹이니 한결 가뿐해진다.
흑산도는 제법 큰 섬이라 곳곳에 숨어 있는 비경도많을 뿐만 아니라 선조들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유적들도 많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경치 앞에서 사진몇 장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돌아오는 것으로 여행을 했다고 한다. 섬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섬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 그곳에 핀 풀과 꽃과 나무와바람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사람이 살고, 풀한 포기, 꽃 한 송이 피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목포로 가는 쾌속선에 올라 점점 멀어지는 흑산도를 바라보며 ‘흑산도 아가씨’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상념에 젖어 본다. 지금은 옛말이 되고 만, 풍어기 때의흑산항에 가득했던 배들과 파시를 상상해 본다. 번성했던 흑산항 주민들의 삶은 어땠을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섬은 그리운 곳이면서 또 벗어나고 싶은 곳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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